노무현의 혁신과 절박함이 남긴 유산

197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용신안으로 ‘개량 독서대’를 출원하며 그의 기술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삶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혁신이었다. 그의 발명은 당시의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이로 인해 그는 고시 공부 대신 창의적인 사업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노무현의 삶의 궤적은 그가 겪었던 고난과 삭막한 시대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최근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경남 창원 동읍으로 이동했다.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과거의 기억들이 흐릿해져 가는 모습은 나에게도 큰 마음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한편, 봉하마을을 방문하며 느낀 감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이제는 그곳보다 주남저수지의 철새를 관찰하는 날이 더 많아졌지만, 노무현의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그의 기백과 혁신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노무현 기념관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그의 실용신안 등록 기록이었다. 그 기록은 그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혁신가이자 기술자였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의 삶이 절박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고시 공부 대신 성공적인 사업가로서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삶은 절박함 속에서 더욱 빛나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1990년대 말, 경제 위기 속에서 힘겹게 신문 배달을 하며 전기 회로를 공부하던 제자와도 닮아있다. 그 제자는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며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그 어떤 절박함을 느꼈을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 제자는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갔고, 그 모습이 노무현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사자바위에서 바라본 봉하마을은 노무현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의 비전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정직하게 땀 흘리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라는 노무현의 메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헌사로 여겨진다. 고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지탱하는 실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제 서울로봇고등학교의 공모교장으로서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노무현의 ‘모난 돌’이 되기를 자처한 그의 태도는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내 제자들이 그가 겪었던 외로운 싸움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그들의 가슴 속에 노무현이 가졌던 당당함과 자부심이 자리 잡길 바란다. 이는 결국 우리의 사회를 더 따뜻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결국, 노무현이 심은 ‘콩’은 우리의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와 함께 자라고 있다. 그 제자에게,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그들의 거친 손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504069?sid=102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