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학습 과정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는 실패가 낙인으로 여겨져 오히려 숨겨야 할 일로 취급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를 빠른 학습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두 지역의 창업 생태계가 얼마나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2024년, 한 국내 대기업 임원이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칭찬받는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과 실리콘밸리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네이버의 신사업 담당자는 3년간 준비한 프로젝트가 6개월 만에 중단되었을 때 이를 실패로 기록했지만, 만약 이 상황이 구글이었다면 ‘빠른 학습’으로 평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받은 스타트업이 2~3년 내에 사업을 중단하는 현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계산된 실패’라는 개념으로 발전해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로드스터 출시 당시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고 한다. 그는 ‘완벽한 전기차를 만들려고 했다면 아직도 개발 중일 것’이라며 시장의 피드백이 가장 정확한 R&D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실패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나중에 성공적인 모델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프로그램은 이 과정이 얼마나 체계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스타트업들은 3개월 동안 최소 3번의 실패 시나리오를 경험하게 되며, 이를 통해 초기 고객 피드백을 수집하고 피벗 결정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기존 아이디어를 포기하게 되지만, 이는 단순한 탈락이 아닌 조기 검증으로 여겨진다.
미국 벤처캐피털들은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세쿼이아 캐피털의 파트너 더그 레온은 실패한 스타트업에 대해 감사하다고 언급하며, 그들이 시장에서 검증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리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23년 실리콘밸리에서 문을 닫은 스타트업 1200여 개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평균 실패 시점은 창업 후 20개월이었다. 이는 과거보다 크게 단축된 수치로, VC들이 의도적으로 ‘빠른 실패’를 유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은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개발 기간을 소요하고, 이로 인해 시장 출시가 지연된다. 네이버의 한 개발팀장은 새로운 기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수많은 검토와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토로하며, 이러한 구조가 스타트업의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스의 창업자 이승건은 초기 버전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1년 반을 썼지만, 결국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중요한 기능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업데이트 방식을 변경했다. 이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MVP보다 완제품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실패를 설계하는 방법으로는 먼저 실험 설계를 통해 킬 크라이테리아를 정해야 한다. 구글의 사례처럼 어떤 지표가 나오면 프로젝트를 중단할지를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 아마존 역시 실패를 혁신의 대가로 보며, 실패의 크기보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속도를 중시한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아니라, 실패를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시스템에 있다. 한국도 이러한 문화로 전환할 시점에 이르렀으며, 이를 위해 첫째, MVP 문화를 정착시키고, 둘째, 실험과 피벗을 일상화하며, 셋째, 실패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영진이 프로젝트의 실패 가능성을 허용하고, 실패를 통해 얻는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마크 저커버그가 ‘가장 큰 리스크는 리스크를 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를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빠르게 실패할수록 빠르게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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