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무역 환경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물류비용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중동 지역의 긴장이 심화되고, 이에 따라 해상 물류비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해상 운송에서 ‘전쟁 및 해상 리스크 보험료’는 이제 단순한 변수로 남지 않고, 구조적인 비용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24~2025년 동안 홍해 지역에서의 후티 반군 리스크는 올해 들어 다소 완화된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동안 쌓여온 전쟁 위험 프리미엄(AWRP)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전쟁 위험 프리미엄은 선가의 0.2%에 달하며, 이는 과거의 평시 요율인 0.03%와 비교했을 때 여섯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러한 비용은 마치 영구적인 ‘통행세’처럼 모든 화물에 부과되고 있다.
글로벌 해상 보험료는 주로 런던과 버뮤다의 민간 보험 시장에서 결정되며, 일단 설정된 요율은 쉽게 조정될 수 없다. 이는 시장의 공포 심리와 자본 보전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쟁 위험 보험료는 과거에 비해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한 번 상승하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는 해상 운임이 시장의 충격 후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통 해상 보험료는 컨테이너 하나당 붙는 경미한 수수료로 인식되지만,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는 그 규모가 운임 자체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 위험 보험료는 화물의 무게나 부피가 아닌 선박의 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산정되므로, 고가의 최신 선박일수록 높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 비용은 항해 전체가 아닌 위험 구역에 체류하는 기간에 따라 부과되므로, 위험 구역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선주는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선가 2억 달러인 최신형 LNG 운반선이 위험 구역을 통과할 경우, 단 7일간의 통행료로 200만 달러(약 27억 원)가 청구될 수 있다. 이는 선박 운영비를 수십 배 초과하는 금액으로, 이러한 비용은 결국 화주에게 전가된다. 해운 시장의 계약 구조는 이러한 비용이 화주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바, 이는 화주의 실질 원가에 즉시 반영된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해상 리스크 지역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해 지역의 위험이 줄어드는 사이 흑해 지역은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드론 공격이 상선과 항만 인프라를 겨냥하면서 보험료가 급등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흑해 기항 보험료는 지난달 선가의 1.0%로 치솟았다. 흑해는 세계적인 곡물과 에너지의 중요한 출구로, 이 지역의 보험료 상승은 우크라이나산 옥수수나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 가격 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 역시 우려되는 지점이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 지역을 통과하고 있으며, 이란의 소형 선박이 미국 국적 유조선에 접근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장은 이미 ‘전쟁 전조’ 프리미엄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이란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에 배럴당 7~10달러의 프리미엄을 추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운임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보험료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업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해운 시황이 선복량 과잉 공급으로 인해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보험료는 변동이 적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해운사들은 리스크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험사들은 대형 사고 발생 후 자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요율을 급격히 인상하게 되며, 사고가 멈추더라도 요율을 즉시 내리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시차로 인해 보험료는 실물 경기 회복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반응하게 된다.
S&P 글로벌의 데이터에 따르면,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LR1 탱커의 운송 비용을 분석한 결과, 홍해 경유가 희망봉 우회보다 비용적으로 비슷하거나 더 비싸게 평가되는 구간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보험료 상승으로 인한 결과로, 물리적 거리가 짧은 항로가 더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관세’는 한국 해운사들에게는 역설적으로 실적 방어막으로 작용하고 있다. 홍해 리스크로 인해 희망봉 우회가 선복량을 흡수하여 운임 하락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 제조 기업에게는 이러한 해상 보험료가 가격 경쟁력을 해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동유럽 현지 생산 비중이 낮은 품목일수록 더욱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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