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를 위한 벤처·스타트업 소통 간담회’는 창업 생태계에 중요한 이슈를 다루었다. 이 자리에는 권칠승, 허영 의원과 함께 벤처기업협회, 액셀러레이터협회, 여성벤처협회, 엔젤투자협회 등 주요 창업 및 투자 단체들이 모여 정부의 정책과 법이 상충되는 문제를 논의했다. 정부는 창업진흥법과 벤처기업육성법을 통해 창업과 재창업을 장려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규제법 체계가 창업자들의 경영상 판단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모순이 존재한다.
특히 배임죄와 같은 경제형벌이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것은 창업자와 스타트업의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 원래 배임죄는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규정이지만, 스타트업 현장에서는 사업 실패나 불가피한 경영상 선택조차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잦다. 간담회에서 제시된 여러 사례를 통해, 자금 흐름이 막혀 우선 순위를 조정한 의사결정이 ‘타인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발로 이어진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투자 실패와 사업 전환 과정에서 창업자만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구조를 만들어, ‘성공하면 기업가, 실패하면 범죄자’라는 냉혹한 공식이 자리 잡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진흥법과 규제법 간의 정합성이 전혀 맞지 않다는 데 있다. 창업진흥법은 실패 경험을 인정하고 재창업을 장려하겠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형법과 경제형벌 체계는 여전히 실패를 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창업자들은 혁신적인 도전을 하기보다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비즈니스 판단 룰을 통해 경영상 판단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경제형벌의 과잉 적용은 재창업 기회마저 박탈한다. 여러 연구에서 창업 실패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음 창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지만, 한 번의 실패가 형사기록으로 남는다면 이는 금융 및 투자 접근에 큰 장벽이 된다. 간담회에서 특히 강조된 점은, 여성과 청년 창업자에게 경제형벌 리스크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자본력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이들은 단순한 민사 분쟁조차 형사 절차로 이어질 위험이 크며, 소송 과정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창업 생태계의 발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첫째, 경영상 판단에 대해 배임죄 적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고의적 사기나 사적 유용 목적이 아닌 경우, 창업자의 선택은 실패로 간주되지 않아야 하며 도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둘째, 진흥법과 규제법 간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창업을 장려하는 법이 존재하는 만큼, 규제법도 민사 중심의 해결 원칙을 명문화하여 형사처벌은 예외적 상황에만 적용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셋째, 스타트업 전용 분쟁조정센터 설립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창업자가 형사 절차 대신 신속한 민사 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번 간담회는 단순한 의견 교환의 자리가 아닌, 벤처와 스타트업 그리고 투자 생태계의 핵심 주체들이 경제형벌 합리화라는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액셀러레이터들은 이미 연대보증을 요구하지 않는 투자 문화를 실천하고 있으며, 이제 법과 제도가 그 뒤를 따를 필요가 있다. 경제형벌을 합리화하고, 진흥법과 규제법의 충돌을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핵심 과제다. 창업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혁신을 지켜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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