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샌드박스는 대한민국의 혁신과 성장을 위한 핵심 제도로 자리 잡고 있지만, 최근 루센트블록 사태를 통해 그 제도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 제도는 신산업이 낡은 법령의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허용하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기업들이 실험을 마친 뒤에도 정책적 불확실성에 시달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과연 이 제도가 혁신의 요람인지, 아니면 기업들에게 희망고문의 실험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루센트블록과 같은 핀테크 및 부동산 조각투자 기업들은 규제샌드박스의 틀 안에서 비즈니스 모델의 유효성을 검증받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들은 정책 설계의 주체가 아닌 참고용 데이터 제공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는 혁신의 통로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정책적 공정성의 훼손을 의미한다. 즉, 성공적인 실험이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성과가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규제샌드박스는 실험 단계까지는 매뉴얼을 갖추고 있지만, 실험 종료 후에는 법적 진공상태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기업들은 초기에는 리스크를 감수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퍼스트무버’로 칭송받지만, 제도화 과정에서는 기득권의 저항과 행정적 편의주의에 밀려 ‘닭 쫓던 강아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비극적인 전개는 결국 기업들에게 정부의 정책실험에 이용당하는 듯한 박탈감을 안겨준다.
선진국들은 규제샌드박스를 단순한 예외 허용이 아닌, 정식 제도권 진입을 위한 연속적인 프로세스로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의 샌드박스는 기업이 샌드박스에 참여하는 시점부터 어떤 지표를 달성하고 어떤 요건을 충족하면 정식 인가로 전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정부와 기업 간의 정책적 계약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한다. 기업이 리스크를 지고 실험에 참여한 만큼,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다.
규제샌드박스가 혁신의 마중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실증 종료 후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구체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첫째, 샌드박스 승인 당시 주어진 조건과 성과를 달성한 경우, 정식 제도권에 진입할 때 가점을 부여하거나 우선적인 인가 기회를 제공하는 보상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제도화 판단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실증이 끝난 이후에야 제도화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단계에서부터 어떤 성과가 도출되면 어떤 방식으로 법령을 개정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제도화 지연이나 정책 방향의 선회 시 참여 기업을 보호하는 경과규정 및 보호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의 핵심 화두가 ‘창업’인 만큼, 창업가들이 험지에 뛰어들 때 정부의 정책이 그들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루센트블록 사태는 단순한 기업의 분쟁을 넘어 대한민국 규제혁신 시스템의 신뢰도를 시험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젊은 창업가들이 흘린 땀방울이 제도화라는 이름 아래 기득권에 의해 잠식되지 않도록, 관계당국은 규제샌드박스의 빈칸을 공정성과 신뢰라는 가치로 채워야 할 것이다. 이는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창업가들의 열정을 꺾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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