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프랑스의 샴페인 지역에서 시작된 두 독일과 스위스 출신 이민자의 이야기는 샴페인이 단순한 술이 아닌 문화와 역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습니다. 빌헬름 도이츠와 앙리-마르크 드 브노쥬는 각각 독일과 스위스에서 국경을 넘어 샴페인의 고향인 프랑스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하며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도이츠는 1838년에 하우스를 설립하고, 그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읽히며 ‘도츠’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는 아내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포도밭을 통해 품질 높은 샴페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의 와인은 유럽 왕실과 신대륙의 대통령 식탁에 오르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1880년대에는 그의 이름이 왕의 서명으로 프랑스인이 되며, 가족의 역사와 함께 하우스는 성장의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도이츠 하우스는 1911년의 폭동을 겪으며 큰 시련을 맞이합니다. 당시 재배농들은 가짜 샴페인에 대한 분노가 쌓여 있었고, 이로 인해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이 폭동은 샴페인 원산지 통제 명칭(AOC) 제도의 기초가 되는 사건으로, 도이츠 하우스는 이 시기에 재배농들과의 계약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한편, 드 브노쥬는 1838년 샴페인 역사상 최초로 일러스트 라벨을 제작하여 시장을 혁신했습니다. 그의 창의적인 접근은 소비자들에게 와인의 시각적 매력을 더하고, 판매량을 급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드 브노쥬는 또 다른 이민자의 시각에서 샴페인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며, 파란 리본이라는 상징으로 고향과 프랑스의 결합을 표현했습니다. 이는 그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문화에 기여하고자 했던 의지를 나타냅니다.
두 하우스의 창립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샴페인 산업에 뿌리를 내리며, 이방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프랑스 문화를 수호했습니다. 도이츠와 드 브노쥬는 샴페인 지역에서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샴페인을 국경을 넘는 글로벌한 술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샴페인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 두 이방인의 정신을 느끼며, 국경을 넘어선 와인의 역사를 함께 기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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