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1952년 작은 화약 회사로 시작하여 현재 자산 총액 149조 6050억원에 달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창립자 김종희는 전후 복구를 위해 화약 사업에 전념했으며, ‘정직하고 정확한 화약인’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경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하여 화약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 창업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화약이 국가 재건에 필수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52년 한국화약을 설립한 그는 1957년에는 국산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하여 기업의 기초를 다졌다. 김 창업주는 사업이 국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도 거절하며, 사업의 경제성과 국가의 부담을 고려한 판단을 내렸다. 그의 원칙은 단순히 사업의 성공을 넘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김 창업주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 여겼다. 그는 신입사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과 친근하게 대화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따뜻한 리더십 속에서도 그는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김 창업주는 20년 동안 같은 시계를 착용하고, 구멍 난 양말도 신는 등 소박한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나 반면에 남의 돈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따졌고, 직원들에게도 공정함을 요구했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는 그의 경영 철학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 창업주는 법적 책임을 따지기 전, 먼저 사과문을 발표하고 피해 보상에 나섰다. 이는 그가 강조했던 ‘상도의’ 원칙을 실천한 사례로 남았다. 그는 ‘장사는 주판을 놓기 전에 상도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김종희 창업주는 고향 천안에 학교법인을 세우고, 인재 양성을 위해 북일고등학교를 세웠다. 그는 1981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철학과 원칙은 한화그룹의 DNA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화약에서 시작된 그의 신념은 기계, 화학,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되었지만, 그 본질은 항상 ‘상도의’와 ‘정직함’이었다. 한화그룹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김종희 창업주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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