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의 순간은 언제나 복잡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최근, 한 친척 어르신이 39년 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며 정년 퇴임을 맞이했습니다. 그분은 퇴임의 기쁨보다도 오히려 서운함과 막막함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오랜 세월을 한 분야에서 헌신해 온 이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일 것입니다. 나도 이제는 퇴직이라는 개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처음에는 퇴직 후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져갑니다.
프리랜서로 살아온 제 삶은 항상 불확실한 고용 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이 있을 땐 해당 직업을 가지지만, 일이 없을 땐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언제든지 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세상에는 나보다 더 특별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일 것입니다.
코미디언 송은이와 김숙은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들은 작은 사무실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하며, 서서히 성장하여 업계의 주목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들의 성공을 보며, 나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자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회사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결단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용기 있는 선택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성공을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은 그들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이유로 나도 몇 년 전 1인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원고가 선택받기만 기다리기보다는 내 스스로 원하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일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글 쓰는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작해야 했습니다. 사업에 대한 재능이 전무한 나에게는 출판사가 어떻게 운영될지 암담하지만, 이 작은 기업 덕분에 작가로서의 퇴직을 늦추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끝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지글에서 퇴직 소식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내가 이곳에 이사 오던 시절,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던 분입니다. 그분의 빈자리가 곧 누군가로 채워지겠지만, 그동안 보여주신 정성과 헌신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매해 추석이면 경비원 선생님들께 선물을 드리곤 했습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퇴직을 앞둔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며, 그분의 서운함을 이해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퇴직 후의 일상이 덜 적적하시도록 기도하며, 그분의 새로운 시작이 평안하길 바랐습니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진지한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삶의 여정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지며,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관련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33004?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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