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는 진단이 아닌 증상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주의’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지만, 이는 실제로 진단명이 아니라 단지 증상에 불과하다.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 흔히 접하는 발열과 마찬가지로, 학벌주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그 이면에 복잡한 원인과 배경이 숨겨져 있다. 발열은 질병의 신호로, 이를 단순히 해열제로 낮추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학벌주의라는 현상도 단순히 특정 대학의 이름으로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 불신과 정보의 비대칭, 사교육 시장의 과열 등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구조적 증상이다.

전문가들은 ‘학벌주의 완화’를 위해 정책을 제안하지만, 이러한 대증요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정책은 대중의 조롱을 받으며, 이는 정책의 비효율성을 드러낸다.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종종 ‘청년들이 극우로 변했다’는 식으로 대중을 비난하지만, 이는 역설적이다. 학벌주의의 수혜를 받은 이들이 그 이익을 누리지 못한 이들을 비난하는 구조는 사회적 비극을 나타낸다.

학벌주의라는 용어는 초기 학벌주의와 고도화된 엘리트주의의 간극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진단의 언어가 결여되어 있다. 초기 학벌주의는 단순한 권력 구조였지만, 현재는 그 권력이 더 복잡하게 얽히고, 개인의 역량과 기여가 아닌 사회적 위치가 정당화되는 상황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기식 정당화가 나타나며, 이는 공적 기여와 무관하게 개인이 평가받는 새로운 형태의 엘리티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은 불만을 품지만, 그 불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설명할 언어가 없다. 학벌주의라는 진단명이 없으면 사회적 불만은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명확히 분석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 대중이 경험하는 불편과 부조리는 마치 발열과 같은 신호로,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 문제의 기저에 있는 병리와 그 경과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학벌주의의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와 교육 시스템의 문제로 확대된다. 대중은 오랫동안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느껴왔지만, 그 문제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기에 ‘말할 수 없는 분노’만이 남았다. 의사가 발열의 기원을 찾아야 하듯, 교육 현장에서도 학벌주의의 기원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진단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학벌주의는 단순히 나쁜 현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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