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혁신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애플의 아이폰은 단순히 기업의 독창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제품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국가의 지원과 투자가 있었다. 중앙처리장치,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음성인식 등 12종의 핵심 기술이 국가 주도로 개발되었으며, 이를 통합하여 혁신적인 제품을 탄생시킨 결과가 바로 아이폰이다. 구글의 알고리즘 또한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보조금 지원을 받아 개발된 것으로, 이는 국가가 혁신의 기초를 다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013년,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저서 <기업가형 국가>는 혁신이 단순히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리스크 부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AI 시대의 도래에 따라 이러한 주장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기업가형 국가란, 정부가 기업가정신을 키우고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AI 기술은 고위험, 장기 투자 산업으로, 기초과학,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재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범용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자본을 조달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수준의 자본 조달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기업가형 국가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AI 패권 경쟁은 기업 간의 경쟁을 넘어 국가 간의 산업 생태계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반도체 보조금, 에너지 인프라 및 공공조달을 결합하지 않고서는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는 국가와 기업이 장기 목표를 공유하고 위험을 분담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기업가형 국가의 지향점은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체제가 아니다. 현재 한국에 필요한 정부는 산업 정책을 주관하는 개발독재형 정부도,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관자형 정부도 아니다. 정부는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그 길이 국가적 목표를 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AI 전환을 위한 대규모 기반 투자와 국제 통상 질서의 변화에 대한 대응은 국가가 맡고, 민간 부문은 이러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세부 전략과 사업화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협력해야 한다.
결국, 국가가 투자자이자 공급자, 수요자, 조정자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지금, 정부와 시장의 조화로운 협력이 절실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는 기업가형 국가의 실현을 통해 가능할 것이며, 혁신을 이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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